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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천하삼분지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 전기차 브랜드 중 생각나는 회사가 있느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비야디(BYD)’라고 말할 것이다. 더러 최신 정보에 익숙하다면 ‘베이징신에너지자동차(北京新能源汽, 약칭 베이치)’도 나올 것이다. 외국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중국의 전기차 브랜드는 비야디지만 실제로 중국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해온 회사는 베이치다. 베이치는 2009년 설립해 2014년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고, 올 4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21만4천200대다. 특히 지난해 판매량은 10만3천200대로 실제로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중국의 고전 삼국지에 빗대자면, 비야디는 역사를 가진 황제의 권위를 업고 조조가 지도하는 위나라이고, 베이치는 신흥 강자로 손권이 지도하는 오나라다. 여기에 유비는 낄 자리가 없었다. 그런 유비가 수경 선생으로부터 와룡, 봉추 중에 하나만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유비에 해당하는 인물이 ‘닝더스다이(德代, 약칭 CATL)’의 사장 정이쥔(曾毓群)이다. 2011년 이 회사를 창업한 그는 저우지아(周佳), 리핑(李平) 같은 참모를 얻은 후 배터리 산업을 장악해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것을 ‘천하삼분지계’의 수단으로 삼았다. 물론 이 정도의 사업을 하려면, 중국 지도부의 후원은 필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결과를 보면 '유비' 전략은 빛을 보는 것 같다. 최근 선전증권거래소에 상장함으로써 CATL은 이제 날개도 달았다. 발행 주식수는 전체 자본규모 10%에 해당하는 2억1천700만주다. 주당 발행 가격은 25.14위안으로 전체 공모 자금은 54억6천200만 위안(약 9천200억 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상장 규모는 당초 목표로 했던 131억 위안(약 2조2천억 원)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지만, 일단 기업 공개를 했으니 더 저돌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CATL는 사드 후폭풍으로 우리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 진출이 늦어지는 틈을 타고 급성장했다. CATL의 배터리는 15분 충전에 30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고 15년 동안 1만5천 번을 충전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시장에서는 당연히 최강자로 부상하는 CATL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테크노시스템리서치는 “올해 CATL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19%로 일본 파나소닉(15.5%)을 누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나소닉은 세계적인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배터리 사업 파트너다. 일단 수치에서 앞서가면 세계시장 점유율은 바뀌기가 쉽지 않다.
CATL의 무기는 ‘가격’이었다. 배터리 판매가격을 2014년 와트시(Wh)당 2.89위안(486원)에서 2017년 Wh당 1.41위안(237원)으로 절반까지 낮췄다. 배터리의 원재료로 쓰이는 희토류와 코발트를 중국이 많이 확보한 것이 작용했다. 이런 가격 경쟁력은 파트너를 얻는 데 힘이 됐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인증이 늦추어지는 사이에 중국 자동차사는 물론이고 BMW, 다임러·폴크스바겐, 닛산, 혼다 등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CATL의 폭주는 세계시장에서 일본업체들과 주도권을 다투는 LG화학이나 삼성SDI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더 주의 깊게 볼 것은 세계 전기차 시장이다. CATL는 아직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지만 자체 브랜드든 협력 브랜드든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 점유율만큼 위협적이다. 전기차 제조원가에서 배터리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만큼 CATL의 전기차 진출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전기차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전기차의 경우 최고급 브랜드는 테슬라나 BMW 몫이다. 중고급 브랜드부터는 앞서 소개한 비야디나 베이치가 시장을 분할하고 있다. 더 깊게 볼 것은 2인용차 등 소형 전기차 시장이다. 중국도 지금까지는 중대형 차 위주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추세지만, 4차산업혁명에 따른 스마트 도시에서는 소형 전기차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상하이 지아딩에 구축한 미래 자동차 도시는 물론이고, 시진핑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슝안신구도 스마트 시티의 기본인 친환경 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전기차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이런 흐름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혼다나 닛산은 이미 경쟁력 있는 소형 전기차 시장 진출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15분 충전해 300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는 소형차가 보급될 경우 지금 일본 시장을 주도하는 소형 자동차가 전기차로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이 많다.
한국도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중형차가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데, 미세먼지 문제 등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전기차에 대한 관심을 끊기 힘들다.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다. 중국 배터리와 경쟁하기 위해 코발트 사용이 줄어드는 배터리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국제사회의 제재가 닿지 않은 곳까지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야 한다. 만약 여기서 경쟁력을 잃는다면 우리 배터리 시장은 물론이고 전기차 시장, 향후 자동차 시장에까지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제갈량과 노숙의 머릿속에 있었던 ‘천하삼분지계’는 적벽대전을 통해 실현된다. 이 적벽대전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조조의 자만과 수전에 대한 몰이해였다. 반면에 연합국은 황개의 고육책 등 처절한 자기희생이 자리했다. 거기에 허구 같지만 제갈량의 ‘동남풍’이 작용했다.
배터리 혹은 전기차 삼국지는 향후 어떤 형세를 띨지 모른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 축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이런 위치는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 일단 지금의 형국으로 본다면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에서 중국이 그 형세를 넓혀가는 것은 확실하다.
[출처 = 한국무역협회(www.kita.net)/ 2018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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