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쿠리온 쿠리온(Kurion)은 영국 소도시 다번트리(Daventry)에 위치한 종업원 20명 정도의 작은 기업이다. 그러나 초대형 수도회사들이 주름잡는 영국 물 시장에서 이 작은 회사의 위상은 대단하다. 국영기업 중심인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각종 기간산업, 수도, 에너지, 대중교통 등이 민영화되어 있어 여러 개의 대형 민간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수도 공급, 하수처리, 수력 등 물산업 또한 탬즈워터(Thames Water), 베올리아(Veolia), 사우스이스트워터(South East Water), 스코티시워터(Scottish Water) 등 16개의 대기업이 영국의 각 지역을 과점 지배하고 있다. 이런 경쟁 중심 수자원 시장에서 이들 대기업 거의 모두가 중소기업 쿠리온의 수처리 솔루션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쿠리온의 이안 버크(Ian Burke) 사장은 “영국의 부족한 점을 파악해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며 성공 비결을 밝혔다. 실제로 쿠리온은 수처리 관련 원천기술을 개발하기 보다는 각각의 기술 특징을 하나로 묶어 종합솔루션으로 제공하는 응용사업에 주력했다.

물 부족국가 영국에서 빗물을 식수로 재활용하는 기술, 노후 수도관에서 새는 물을 절약하는 기술, 연수화 기술, 삼투압과 자외선을 이용한 정화기술에 이어 최근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일명 ‘도시광산(폐가전제품 등에서 귀금속을 추출하는 사업)’까지 수자원시장에 적용해 폐수에서 금을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시장 트렌드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물 부족 현상을 야기하는 문제로 노후화된 수도관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06년 기준, 영국 수도관 중 10만㎞는 100년 전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노후화로 인해 매일 약 35억L 이상의 물이 샜다. 이는 영국 상수도 하루평균 공급량인 150억L의 5분의 1 이상이며 영국인이 1년간 마시는 포장 생수의 양보다도 많은 실정이다.

영국의 주요 수도사업자들은 이후 2008년부터 영국 수도관 파이프의 대대적인 교체사업을 개시했지만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도심지역 곳곳의 도로를 매일같이 파헤치는 공사는 영국 교통의 흐름을 마비시켜 원성을 샀다. 쿠리온은 이를 재빨리 파악하고 수도관 교체 대신 특정구간에 압력집중 장치를 매설해 침수를 막는 솔루션을 고안해냈다.

현재 탬즈워터 등 영국 최대 수도사업자들이 채택해 런던지역 약 5천㎞에 달하는 노후수도관에 이를 적용키로 했으며 쿠리온은 향후 5년간 약 8천만 파운드의 매출증가 효과를 보게 됐다.

 

매년 엄청난 양으로 폐기되는 휴대폰, 컴퓨터 등 가전제품은 금 광산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전자회로에는 현대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금, 알루미늄, 이리듐, 플래티넘 등 희귀 금속이 다량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폐가전제품을 수거해 귀금속을 추출해내는 일명 ‘도시광산’사업이 세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개시되고 있다.

쿠리온은 이를 물에 적용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해냈다. 기존의 간단한 전기분해(electrolysis) 기법을 대폭 개량한 ‘EWEW Electrowinning’ 이라는 금속추출 기술을 수처리기술과 결합한 방식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저수지, 수처리시설, 산업 하수도관 등에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버려지는 물 속에서 금, 은, 구리, 팔라듐 등의 희귀금속을 뽑아낼 수 있다.

 

이 기술은 영국 제조업의 핵심이자 희귀금속 수요가 많은 항공우주산업 주요 공장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도입됐다. 세계적인 항공우주업체인 마틴베이커(Martin Baker),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EADS) 등이 첨단전투기, 인공위성 등을 만드는 공장에 이 장비를 설치, 낭비되는 공업폐수 속 귀금속을 환원해 비용 절감효과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술의 우수성이 소문 나자 드디어 수도사업자, 수력발전 사업자 등 막대한 수자원을 보유한 업체들이 관심을 보여 왔다. 쿠리온은 소량의 공업폐수 처리장치에서 벗어나 대량의 흐르는 물과 일반 담수에서도 고효율로 귀금속 등 광물자원을 뽑아낼 수 있는 유수방식(Flowing water treatment) 솔루션을 개발해 지난 2009년 10월 유럽최대의 폐기물처리 전문기업 베올리아(Veolia)와 납품계약을 성사시켰다.

원천기술을 개발하지 않고도 업계 전반에 걸친 히트 솔루션을 개발한 쿠리온의 노하우는 중소기업이 시장수요 파악을 통해 틈새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워 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 아일랜드에 수출된 팔라듐 추출 플랜트(왼쪽)와 금 추출장치(오른쪽). [사진출처 = 쿠리온]

▲ 쿠리온의 주력 제품인 진공삼투압방식 수처리솔루션. [사진출처 = 쿠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