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스터 브라운(Lester R. Brown)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장 / 월드워치연구소 창시자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인 미국 지구정책연구소 레스터 브라운(77) 소장이 지난 10월10일 한국을 방문, 11일 오후 서울 정동에 있는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기후변화센터 창립 3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에서 「벼랑 끝에 선 지구(World on the Edge),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을 했다.

 

그는 미국의 환경운동가로 월드워치연구소(Worldwatch Institute)와 지구정책연구소(Earth Policy Institute)의 창시자이자 현재 지구정책기관의 대표이다.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레스터 브라운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선정했고, 캘커타 텔레그래프지는 환경운동의 권위자로 선정했다.

 

1955년 러트거스대학교에서 농업과학으로 학위를 받은 후 인도 농촌에서 6개월을 보내면서 식량과 인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59년에는 미국 농무부 해외농업서비스에서 국제농업전문가로 근무했다.

 

브라운은 매릴랜드대학에서 농경제학, 하버드대학에서 행정학으로 석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1964년에는 농무부장관 오빌 프리먼에게 해외 농업 정책에 대한 조언을 주는 자문가로 활동하였고, 1966년에는 장관에 의해 국제 농업 개발 서비스 경영자로 임명되었다. 그 후, 1969년 초 해외개발위원회 설립을 위해 정부기관을 떠나게 되었다.

 

1974년에는 록펠러 브라더스펀드의 지원으로 최초의 글로벌 환경 문제 연구소인 월드워치 연구소를 창립했다. 또, 2001년 5월에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를 수립하기 위해 비전과 로드맵을 정립하는 지 구 정책 연구소를 설립했다.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50권이 넘는 책을 단독으로 펴내거나 공동으로 집필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책을 가장 폭넓게 출간한 작가 중 1인으로 그의 책은 4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

그의 최신 출간 저서인 뜨거운 지구가 보내는 냉혹한 경고 : 『앵그리 플래닛(원서 : World on the Edge: How to Prevent Environmental and Economic Collapse)』은 파이낸셜 타임즈로부터 향후 기업들이 직면하게 될 중요한 국제 문제들을 다루는 도발적인 지침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브라운은 25개의 명예 박사 학위 및 많은 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중 맥아더 펠로우십 1987년 유엔 환경상, 1989년 세계 자연보호기금 금메달, 1994년 푸른 지구 상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스웨덴 왕립 농림원로부터 보스트룀상을 받았고, 2010년에는 포린 폴리시지에서 최고 국제 사상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본지는 레스터 브라운 소장의 기조 강연을 특별취재해 게재한다. [취재·정리 = 배철민 편집국장]

2010년 여름, 모스크바 기온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다. 6월말에 시작된 타는 듯한 열기는 8월 중순까지 계속되었다. 서러시아는 8월 초 덥고 건조한 나머지 매일 300∼400건씩 새로운 화재가 발생했다.

삼림 수백만 헥타르(㏊)가 불탔고, 주택 수천 채가 잿더미로 변했다. 작물은 말라 시들었다. 노인과 호흡기 질환자는 숨을 쉬기가 힘겨웠다. 열 스트레스와 매연으로 사망률이 치솟았다. 모스크바의 7월 평균 기온은 평년 수준보다 거의 섭씨 8도나 높았다.

열파(熱波, 온도가 높은 공기가 넓은 지역을 덮는 현상)가 휩쓰는 동안 모스크바의 기온은 두 차례나 섭씨 37.8도를 넘어섰다. 모스크바 주민들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러시아 국민 1억4천만 명은 “대체 자신들과 모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하면서 깊은 충격에 빠졌다.
130년 동안의 러시아 기상 기록을 깬 찌는듯한 열기는 경작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삼림 상실에 따른 손실과 복원에 필요한 예상 비용을 합치면 약 3천억 달러에 달했다. 작물이 시들면서 거의 1억 톤에 달하던 러시아 곡물 수확량은 6천만 톤에 겨우 이를 수준으로 급감했다.

최근 세계 3위의 밀 수출국으로 부상했던 러시아는 치솟는 국내 식량 가격의 고삐를 틀어쥐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로써 곡물 수출을 금지했다. 그러자 6월 중순에서 8월 중순 사이에 세계 밀 가격은 60%나 치솟았다. 러시아 역사상 최악의 열파와 지속되는 가뭄이 세계 식량 가격을 급등시키고 있었다.

 

▲ 2010년 7월 말 파키스탄 북부에 폭우가 쏟아졌고, 전국의 5분의 1이 물에 잠겨 파키스탄 전역이 쑥대밭이 되었다. 주택 약 200만 채가 파괴되거나 망가졌으며, 2천만 명이 넘는 주민이 피해를 입었고, 사망자는 2천 명에 달했다.

파키스탄 대홍수와 환경적 원인
2010년 7월 말, 파키스탄 북부에 폭우가 쏟아졌고, 전국의 5분의 1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파키스탄 전역이 쑥대밭이 되었다. 주택 약 200만 채가 파괴되거나 망가졌고, 2천만 명이 넘는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는 거의 2천 명에 달했다. 경작지 약 240만㏊ 파괴, 가축 100만 마리 익사를 비롯해 수많은 도로와 다리가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홍수가 폭우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것을 빚어낸 몇 가지 현상이 있었다.

 

■ 산악 빙하 융해 2010년 5월 26일, 파키스탄 중남부 모헨조다로 지방의 공식 기온은 섭씨 53도로 아시아에서 최고 기록이었다. 인더스 강 지류들의 발원지인 히말라야 산맥 서부의 눈과 빙하는 빠르게 녹고 있었다. 빙하가 녹은 물은 폭우가 내리기 이전에 이미 인더스 강의 수량을 늘려놓았다.

■ 인구 및 가축 증가로 헐벗은 식생 파키스탄은 1억8천500만 명의 인구가 미국 면적의 8%에 불과한 영토에서 생활한다. 인더스 강 유역에 원래 있던 숲은 90%가 사라진 탓에 빗물을 흡수하여 유출수를 줄일 여지가 거의 없다.
게다가 파키스탄에서 사육하는 가축 수는 1억4천900만 마리에 이른다. 그 결과 전국의 식생은 헐벗어 비가 내리면 유출수가 빠르게 흐르면서 토양을 침식시키고 저수지 바닥에 쌓여 홍수 저장 능력을 떨어뜨린다.

■ 군사 안보에 자원 집중  20여 년 전, 파키스탄은 안보를 주로 군사적인 측면에서 정의하는 쪽을 택했다. 1990년에 국방 예산은 교육 예산보다 15배, 보건과 가족계획 예산보다는 무려 44배나 많았다. 그 결과 지금 파키스탄은 여성의 60%가 문맹으로, 가난하고 인구는 많고 환경은 황폐한 나라가 되었다.
2010년 여름 러시아와 파키스탄에 일어난 일은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을 미리 보여준 사례다. 기후학자들은 기온 상승이 더 많은 극단적인 기후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 증가하는 소, 양, 염소는 초원을 사막으로 바꿔 놓고, 삼림 벌채로 해마다 520만㏊의 숲이 사라진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스마트라섬의 삼림 파괴 현장.

자연 부양계의 붕괴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6천 년에 걸쳐 우리는 지구의 자연계가 내놓는 지속 가능한 생산량에 의지해 살아왔지만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지속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어느 영역에서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다. 많은 곳에서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우물이 점점 말라가며, 세계 경작지 3분의 1은 토양 침식이 토양 형성보다 더 빨리 이루어져 척박한 땅으로 변하고 있다.

증가하는 소, 양, 염소는 초원을 사막으로 바꿔 놓고, 삼림 벌채로 해마다 520만 ㏊의 숲이 사라진다. 원양 어업의 5분의 4는 잡을 만큼 최대한 조업을 하거나 남획을 함으로써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편,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 기온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기온 상승은 열파와 극심한 가뭄, 더 심각한 홍수, 파괴적인 폭풍을 비롯하여 더욱 극단적인 기후 사건을 보다 자주 일으킨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극지방의 빙상과 산 위의 빙하도 녹는다. 현재 점점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그린란드의 빙상이 다 녹으면, 벼농사를 짓는 아시아의 삼각주들과 전 세계의 많은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긴다.

환경 지표를 이용하여 현 상황을 평가한다면, 경제를 떠받치는 자연 부양계(natural support system)의 세계적인 쇠퇴는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 인류 집단 전체의 수요가 지구의 재생 능력을 처음 초월한 것이 1980년경이다. 1999년이 되자 지속 가능한 산출량을 20% 초과했고, 2007년에는 50%를 초과했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현재 소비량을 지탱하려면 지구가 1.5개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껏 자신의 자연 부양계를 계속 파괴하고서 살아남은 문명은 없다. 우리 문명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다른 렌즈를 통해 미래를 본다. 주류 경제학자가 보기에 세계 경제는 과거도 눈부실 뿐 아니라 미래도 전망이 밝다. 경제 성장을 예측하는 기관들은 으레 세계 경제가 연간 약 3%씩 팽창한다고 말한다. 이 속도라면 2035년이면 세계 경제는 2010년 규모의 두 배가 될 것이다.

 

주류 경제학은 지구 자연계의 지속 가능한 산출량 문턱 값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예상과 정책 결정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그리고 붕괴 직전의 생태계와 어긋나 있다.

숲이 줄고, 토양이 침식되고, 지하수가 고갈되고, 어장이 황폐해지고, 기온이 상승하고, 빙상이 녹아 내리는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이대로 쭉 이어질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사실 시장은 가격을 결정하지만,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현재 직접비용보다 실로 어마어마한 간접비용을 발생시키는 사례들도 있지만 시장은 그 간접비용을 누락시킨다.  

 

휘발유의 경우, 원유를 채굴하고 휘발유로 정제하여 미국의 주유소로 운송하는데 드는 비용은 이를테면 1gal당 3달러다. 하지만 기후변화, 호흡기 질환 치료비, 원유 누출 사고, 안정적인 원유 확보를 위해 중동에 미군이 주둔하는데 드는 비용 등이 포함된 간접비용은 1gal당 총 12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는 엄청난 비용을 장부에서 누락시키고 있다. 파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환경 추세는 경제는 물론 사회 자체의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미리 알려주는 선행 지표다. 오늘 지하수위가 낮아지는 것은 내일 식품 가격이 오른다는 신호다.

식량 위기와 문명 붕괴
이전 문명을 분석하는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경제적·사회적 붕괴가 일어나기에 앞서 거의 언제나 환경 쇠퇴기가 있었다. 수메르에서는 관개(灌漑) 체제 설계에 내재된 환경 측면의 결함 때문에 토양의 염분 농도가 증가했다. 이는 밀 수확량의 감소를 가져왔다. 염분에 더 강한 작물인 보리로 바꾸었지만 이윽고 보리 수확량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문명의 붕괴가 뒤따랐다.

 

마야인에게는 삼림 파괴와 토양 침식이 일어났다. 팽창하는 제국을 뒷받침할 경작을 위해 개간되는 숲이 점점 늘어났고, 그에 따라 토양 침식이 일어나서 열대 토양의 생산성이 떨어졌다.

개간한 드넓은 땅이 지역 기후도 변화시켜서 강수량을 줄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몇 가지 환경 추세가 서로를 강화하면서 수렴되어 식량 부족을 야기했고 그것이 마야 문명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고도로 도시화하고 기술이 발전된 사회에 살지만, 수메르인이나 마야인과 다를 바 없이 지구의 자연 부양계에 의존한다.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 살아간다면 문명 붕괴는 더 이상 일어날지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 것이냐의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자연 부양계를 파괴하는 경제를, 우리를 쇠퇴와 붕괴를 향해 내모는 경제를 지니고 있다.

 

현대 농경의 발전을 고려하여, 나는 식량이 우리 21세기 문명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거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가능성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약한 고리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가장 불안한 추세는 기아의 확산이다. 지난 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만성 기아와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 수는 줄어들고 있었지만, 바이오 연료 생산에 전용되는 곡물 소비량이 연간 두 배씩 증가함에 따라 굶주리는 인구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9억 명, 2009년에는 10억 명을 넘었다. 앞선 문명들의 상당수에서 기아의 확산이 붕괴에 앞서 일어났다. 기아의 확산을 지구 문명의 사회적 붕괴에 앞서 나타나는 쇠퇴의 지표로 삼는다면, 쇠퇴는 십여 년 전에 시작된 셈이다.

 

우리가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현안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동안에도, 세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오늘밤 식탁 앞에 앉은 이 중 21만9천 명은 어젯밤에 식사를 못했을 것이고, 그들 중 상당수는 오늘도 빈 그릇만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파탄국가 증가와 사회불안 증대

▲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 극지방의 빙상과 산 위의 빙하도 녹는다. 현재 점점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그린란드의 빙상이 다 녹으면, 벼농사를 짓는 아시아의 삼각주들과 전 세계의 많은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긴다.

환경의 악화와 경제적·사회적 스트레스가 심화될수록, 허약한 정부가 그것을 관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급속한 인구 성장이 계속될수록 경작지는 더욱 부족해지고, 우물은 말라가고, 숲은 사라지며, 토양은 침식되고, 실업은 증가하고, 기아는 확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더 약한 정부는 신뢰와 통치력을 잃고 끝내 파탄국가(failing states), 즉 정부가 더 이상 개인의 안전, 식량 안보, 교육과 보건 같은 기본적인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나라가 된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는 지금 지도에는 국가로 나와 있지만, 국민국가가 아니다. 그 단어의 어떤 의미로 보더라도 말이다. 아프가니스탄, 아이티,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예멘은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점점 몰락하고 있는 많은 약한 정부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해마다 파탄국가의 목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물 부족과 식량 거품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 살아간다면, 세계 경제의 심각한 붕괴가 눈앞에 펼쳐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남은 시간은 10년 단위가 아니라 1년 단위로 헤아리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 우리는 벼랑 끝에 너무나 가까이 가 있기에 파국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2010년의 열파가 모스크바가 아닌 시카고에 닥쳤다면, 1억 톤에 달하던 러시아의 곡물 수확량이 최근에 40% 급감하면서 세계 곡물량이 4천만 톤 줄었다. 그런데 4억 톤이 넘는 미국 곡물 수확량이 40%를 감소한다면, 1억6천만 톤이 사라질 것이다.

 

2011년으로 이월될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곡물 비축량은 러시아 열파 때문에 79일분에서 72일분으로 줄었다. 그 열파의 중심부가 시카고였다면 52일분으로 급감했을 것이다(역사상 가장 적은 비축량은 62일분으로, 덕분에 2007∼2008년 세계 곡물 가격이 3배 뛰었다).

 

모스크바에 닥친 열파가 시카고에 닥쳐서 7월 기온이 평년 수준보다 평균 섭씨 8도 높았다면, 세계 곡물 시장은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일부 곡물 수출국들은 국내 식량 가격의 고삐를 틀어쥐기 위해, 2007∼2008년에 그랬듯이 곡물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했을 것이다.

 

곡물 수입에 의존하는 저소득 국가에는 식량 폭동이 벌어지고 기아가 확산될 것이다. 정부는 두 손을 들지 모른다. 정부가 실패하고 세계 곡물 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지구 경제는 해체되기 시작할지 모른다.

대수층을 고갈시킴으로써 곡물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물을 토대로 한 식량 거품(food bubble)은 이제 터지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관개(灌漑)를 토대로 한 수확량도 줄어들고 있다. 식량 거품이 처음 터진 곳은 사우디아라비아다. 화석 대수층(빙하기가 지날 때 녹았던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간직되어 있는 층)이 고갈되면서 밀 수확량이 거의 300만 톤 줄어들었다.

 

그밖에 적어도 17개국이 지하수를 과잉 양수함으로써 식량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과잉 양수로 생산된 곡물이 1억7천500만 명의 인도인을 먹여 살리고 있고, 중국은 그에 상응하는 인구가 1억3천만 명이다.

 

물을 토대로 한 식량 거품이 정확히 언제 터질지 알지 못하지만,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엄청난 물 부족 확산은 아마 식량 안보와 정치적 안정에 더욱 임박한 위협일지 모른다. 관개용수 공급량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해마다 8천만 명씩 인구가 늘고 있는 세계 문명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우리의 미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물 이용이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석유 이용이 정점에 이르는 시기와 거의 맞아떨어지리라는 점이다. 석유 공급량이 줄어들면서 국가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치솟는 석유 가격에 계속 취약해지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곡물을 기름(에탄올)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발달하면서, 곡물 가격은 이제 석유 가격에 얽매여 있다. 석유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식량 가격도 상승한다는 의미다.

일단 세계의 석유와 물 이용이 정점에 이르면, 인구 증가가 지속된다는 것은 물과 석유의 1인당 공급량이 급속히 줄어든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식량 생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식량 공급에 미치는 효과는 많은 국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기후변화, 인구증가, 물 부족, 빈곤, 식량 가격 상승 등이 미래의 위협요소”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신이 설계한 ‘플랜 B’를 제시했다. ‘플랜 B’의 구성 요소는 2020년까지 탄소배출량 80% 감축, 2040년까지 세계 인구 80억 명으로 안정, 빈곤퇴치, 자연부양시스템의 안정 등이다.

군사력이 안보에 주된 위협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위협은 기후 변동성, 확산되는 물 부족, 지속되는 인구 증가, 기아 확산으로 인한 파탄국가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안보 위협에 맞서 재정 우선 순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세계를 벼랑으로 몰고 가는 것은 경제를 부양하는 자연계 파괴와 기후 체계의 교란이므로, 그런 추세들을 되돌려야 한다. 그러려면 더 이상 지금처럼 살아가서는 안 된다. ‘플랜 B’라고 부르는 것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유달리 벅찬 조치들이 필요하다.

 

‘플랜 B’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 2020년까지 지구 탄소 배출량의 80%를 대규모로 줄인다. 둘째, 2040년까지 세계 인구를 80억 명 수준에서 안정시킨다. 셋째, 가난을 근절한다. 넷째, 숲, 토양, 대수층, 어장을 복원한다.

 

탄소 배출량은 세계의 에너지 효율을 체계적으로 높이고, 교통 체계를 재편하고, 화석연료 연소로부터 지구에 풍족한 바람과 태양과 지열 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줄일 수 있다. 화석연료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은 주로 세제를 재편함으로써 촉진할 수 있다. 소득세를 꾸준히 낮추고 이 감소분을 탄소세 증가로 상쇄시키는 방식이다.

 

인구 안정과 가난 근절이라는 두 가지는 서로를 강화하면서 함께 나아간다. 여기에는 모든 아이가 적어도 초등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포함된다. 적어도 마을 수준에서 기초적인 보건 의료를 제공해야 하며, 어디에서든 여성들이 생식 보건 및 가족계획 서비스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구의 자연 체계와 천연자원을 복원하는 일은 이를테면 물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지하수위의 하락을 막는 세계적인 계획을 포함한다. 즉, 보다 효율적인 관개 체계와 물 효율성이 높은 작물로 옮겨가는 것, 그리고 산업과 도시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물의 재순환 작업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림 파괴를 전 세계에서 금지하고, 수십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는 노력을 전 세계에서 펼쳐야 한다.

 

▲ 엄청난 물 부족 확산은 아마 식량 안보와 정치적 안정에 더욱 임박한 위협일지 모른다. 관개용수 공급량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해마다 8천만 명씩 인구가 늘고 있는 세계 문명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지구정책연구소는 이를 위해 연간 추가로 지출되는 예산이 2천억 달러에 못 미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현재 세계 군사비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지금 세계가 처한 상황은 2008∼2009년의 경제 위기보다 더 긴박하다.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것은 미국의 주택 거품이 아니라 과잉 양수와 과잉 경작에 토대를 둔 식량 거품이다.

 

기후 변동성과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식량 문제가 갖는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우리의 과제는 ‘플랜 B’를 단순히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다하기 전에 환경 쇠락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속히 착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