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25%가 해수면보다 낮아
하상구조 개조로 대규모 홍수피해 발생
생태환경적 복원으로 물관리 접근법 수정

▲ 폴 멘크펠트(Paul Menkveld) 주한 네덜란드 대사

오늘날 세계 각국은 물과 관련된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식수를 충분히, 그리고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 수자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물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문제까지 물관리 이슈 전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Netherlands) 역사는 ‘물에 적응하기 위한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는 북해와 유럽의 4대강에 의해 지형이 형성됐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강이 바로 라인(Rhein)강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유럽의 4대강은 굽이굽이 흘러 프랑스, 벨기에, 독일을 지나 네덜란드 북해 연안으로 흘러왔다. 이렇게 형성된 삼각주가 네덜란드가 된 것이다. 네덜란드 자체가 저지대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지대가 낮다보니 굉장히 많은 물을 함유하고 있다. 강우량도 충분했으며 해수나 하천의 범람도 잦았다. 때문에 습지가 많고 조류와 어류가 풍족했다.

“수자원위원회, 물관리 핵심 역할 수행”
네덜란드 사람들은 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불규칙한 물의 특성과 하천 범람 현상도 받아들이게 됐다. 이렇게 수용할 수 있었던 근거로 사구, 제방, 둔덕이 홍수예방에 충분한 보호책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 조건을 인공적으로 바꾸거나 물의 흐름을 막아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는 인구 밀도도 낮았고, 농업 위주의 경제활동이 대부분이었던 이유도 한 몫을 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농업과 축산업을 위해 토지를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토지 접근성을 높이고 홍수의 위험성을 낮춰 작물과 가축을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수백 년간 네덜란드에서는 강의 흐름을 바꾸기 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방치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홍수를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구라 할 수 있는 수자원위원회(Water Boards)가 설립됐다.

수자원위원회는 네덜란드 물관리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이 기구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운영된다. 만약 수자원위원회가 없어 제대로 된 방재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네덜란드 국토의 3분의 2는 이미 물에 잠겼을 것이다. 

“내륙수로 개발 위해 인공하천 조성”
16세기말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 물관리 접근법에 혁신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그 당시 네덜란드는 세계 교역 강국 중 하나였으며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농산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로 토지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으며 부족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간척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간척사업은 항해 기술에 도입됐던 기술과 기법이 일부 적용됐으며, 토탄(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 지역과 내륙 호수를 건조시켜 이 땅을 농업용과 거주용으로 사용했다.

 

네덜란드 물관리의 두 번째 변화의 시기는 바로 산업혁명 때이다. 네덜란드의 산업화는 영국 산업혁명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19세기 후반에 보다 더 확산됐다. 당시 네덜란드는 어떻게 하면 하천을 급증하는 물자 운송에 적합하게 만들지 고민했다. 그리고 산업화에 따라 인접 국가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운송과 물류유통을 효율화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각됐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로 네덜란드에서는 내륙 수로를 개발했다. 이전에는 하천이 범람할 때 범람원을 사용해서 홍수나 범람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하천을 내륙수로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법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범람원만을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강바닥을 개조하기 시작했고 이 방법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로써 직선으로 넓고 깊은 강을 만들었으며, 네덜란드의 자연스러운 하천 시스템은 댐이 있는 인공 하천 시스템으로 바뀌게 됐다.

“환경 피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 야기”
이러한 하상구조 개조 정책은 지난 1960년대까지 지속됐다. 그러다 과연 이 정책이 지속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물관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계속해서 치명적인 홍수 피해를 겪었다. 지난 1953년에는 범람으로 인해 2천㎢에 달하는 육지에서 1천800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오염, 자원 고갈, 생물종 다양성 훼손 등 네덜란드의 강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피해가 결국은 경제적 손실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됐다.

결국 네덜란드 사회에서 새로운 물관리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술자와 과학자도 강물의 흐름을 어떤 특정한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홍수 피해와 오염 수준을 낮추고, 위생과 정화, 생태환경적 복원 등이 네덜란드 하천관리의 주요 목표로 자리 잡았다. 결국 강물이 흘러가는데 더 많은 여지를 주고 하천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면서 간척사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강물 관리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면서 네덜란드 수자원 부분에서 연구개발 붐이 일어났다. 물 문제를 기술적·제도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정책을 수행하면서 강물과 호수가 생태적으로 복원됐으며 내륙운수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왜냐하면 내륙운수는 환경친화적이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운송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습지와 생태계를 매우 좋아했으며 실제로 여기에 많은 철새와 희귀 식물종이 살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하천관리 정책이 큰 변화를 겪으면서 네덜란드에서 수자원을 관리하는 민간기업과 대학, 정부는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수자원 관리에 관한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 냈다. 네덜란드 기관과 민간기업은 이러한 연구와 경험을 통해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갖게 됐다.

“한국-네덜란드 물 분야 협력 활발”
현재 네덜란드 기업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서 많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경제와 환경에 대한 상반된 수요가 경합을 이루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기업과 사람, 생물종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자원을 관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했다. 이는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녹색성장과도 접목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지금 현재 한국과 네덜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기업 차원에서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3차례의 고위급 회담이 진행됐다. 심명필 본부장도 올해 초 물 분야 전문가와 함께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또, 이 자리에는 네덜란드 수자원위원회 Van Haersma Buma 위원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4대강살리기본부에서 주최하고 있는 이번 국제학술대회야 말로 여러 국가의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