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1일 (토) 00:00:00

 

 

 

 

1. 사회갈등과 거버넌스

최근 3∼4년 동안 사회갈등 현안이 부쩍 늘었다. 사회갈등의 양상도 복잡다단하게 전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갈등의 양상은 ‘억압형→ 잠재형→ 표출형→ 확산형’으로 변동하는데 우리나라는 표출형과 확산형의 과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고(PCSD, 2004), 갈등관계도 전통적인 노사갈등과 지역갈등 양상을 넘어서서 이해집단, 제3섹터, 이념, 부문 등 갈등의 함수관계가 대단히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본적으로 갈등은 사회변화를 촉진하는 동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갈등의 당사자 모두가 정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갈등의 역동성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결과일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역진적 기능으로 그 의미가 제한될 것이다.

특히 국가적 대형 갈등현안 중에 환경관련 사안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환경문제 자체가 기성의 제도적 양식, 즉 권위주의적인 통치체제와 경제성장 중심의 개발정책, 그리고 기술공학적인 사후처방 논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현실의 제도적 토양 위에서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통치 실패(governing failure)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인 역량(institutional capacity)을 높이는 노력은 중요하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특히 높은 환경문제를 보다 효과적이고 민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회제도적인 문제 해결 기제로서 거버넌스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정규호, 2003)

이러한 시대상황과 맞물려 ‘거버넌스’는 학문적, 정책적 관심은 물론이고 일찌감치 시민환경운동의 주요 의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의 정도 차이를 떠나서, ‘요구의 진정성’의 문제로 인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새로운 통치방식으로서 형식과 절차는 비교적 시스템으로 정착되고 있는 반면, 진정한 협력적 의사결정을 위한 노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 협력적 의사결정을 위해 서울시장의 직속 자문기구로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가 구체적이고 철저한 검토의견을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자문위원회가 실시설계(안)을 ‘부결’했지만, 서울시는 공사를 강행하는 상황으로 비화되었다. 거버넌스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형식’의 중요성에 못지않게, ‘실질적인 협력적 의사결정’을 위한 ‘비판적 성찰’이 절실하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우 얕은 형식주의에 얽매여 표면적 성과를 조급하게 요구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성찰을 통한 협력의 진전이라는 진정성이 현격하게 결여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거버넌스의 왜곡사례’라 할 것이다.

이 글은 거버넌스에 대한 혼돈과 왜곡을 극복하고 거버넌스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과제를 제출하고, 거버넌스 실현의 핵심주체인 정부와 시민환경단체들의 역할을 모색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특히 다양한 환경운동 영역 중에서도 물 운동이 가진 대중성과 구체성, 그리고 다양성 등을 바탕으로 ‘물 거버넌스’의 구축을 제안하는 것을 이 글의 중심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2. 물 거버넌스의 필요성

2.1 정책결정에서의 고려요소

세계적으로 수자원에 대한 수요는 세배 정도 늘어났다. 높이가 15m를 넘는 대형 댐은 1950년 5천개에서 지금은 4만5천개로 늘어났다. 즉 50년 동안 하루에 평균 두개의 대형 댐이 건설된 셈이다. 한동안 우리는 대형 건설사업의 공학적 편익만을 고려했을 뿐, 사회적·생태적 비용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즉 대형 수자원 개발사업을 통한 경작지 확대, 발전, 고용 효과만을 따졌을 뿐, 어업의 붕괴, 어족자원의 고갈,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나 지탱가능한 수자원 이용 방식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지구환경보고서 2004)

2.2 물 재해의 급증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한 자연재해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최근의 자연재해는 지난 시대와 그 양상이 크게 다르다. 특히 물과 관련된 재해가 대표적인데, 재해피해 기록을 보면 피해액이 연차적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피해액의 급격한 증가는 최근 이상기후가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사회자본이 크게 증가한 것도 큰 원인중의 하나이다.(김양수, 2004)

이러한 물 재해는 수해 상습지 해소와 주요하천의 개수를 통한 홍수범람을 예방하는 사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한발 역시 제한급수, 비상용수 공급 등의 긴급대책과 댐 건설이라는 장기대책으로 고정화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소하천정비를 통해 하천 개수율 제고, 빈번한 홍수에 대비하여 하천 설계기준을 높이는 방향 등 여전히 수리·수문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재해대책은 많은 이해당사자들과의 충돌이 있어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댐 건설인데 해마다 정부와 시민사회와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그밖에 하천준설, 제방 높이기, 하구둑 보강, 방수로 건설 등 어느 하나 시민사회와 실질적 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될 만한 것이 없다.

갈수록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물 재해는 국민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로서 정부의 일방적인 재난관리 정책의 범위를 넘어섰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사회로서, 그리고 인간의 욕망의 과도함과 끝없음으로 인해 커지고 있는 위협에 대해 비판적 성찰과 협력적 사회 합의, 그리고 구체적인 제도개선은 거버넌스라는 방식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

2.3 도시화율 증가와 농업의 붕괴

도시의 팽창은 경제성장과 비례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국토공간의 농업적 이용을 포기하고 도시적 이용을 강제함으로부터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도시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경쟁력 있는 도시 주변에는 새로운 도시가 쉼없이 만들어진다. 기존 도시의 팽창은 도시외곽의 저지대나 하천인근까지 잠식하게 되고, 새도시는 녹지를 훼손하고 자연하천을 왜곡시키면서 토지이용을 고도화시키는 방식으로 건설된다.

기존도시의 변두리가 개발되면서 물 재난에 취약해지고, 도시는 전반적 위협의 증가라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더군다나 상류지역의 신도시 개발은 홍수시 급속한 우수유입으로 유역 전체의 위험율을 높인다. 논밭이 콘크리트로 포장되고, 지하공간의 개발이 일상화되면서 홍수와 가뭄 피해 모두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도시적 토지이용의 증가 역시 새로운 사회적 합의 방식을 통한 국가운영을 요구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농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부터 추곡수매를 포기한다는 발표를 했다. 쌀시장 개방이라는 국제적 압력을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리고 농업과 농촌은 사실상 포기했으니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거나 농업을 포기하고 농촌을 떠나라는 메시지다. 물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여러모로 유용한 기능을 담당했던 농촌의 미래를 가벼이 볼 수 없다.

2.4 갈등 증폭과 권리담론 확산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터널 노선 결정, 서울외곽순환도로 터널구간 공사, 새만금 간척, 경인운하 건설, 부안 방폐장 건설, 그린벨트내 국민임대주택 건설, 골프장 건설, 신행정수도 건설 등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건설사업 치고 사회갈등을 겪지 않는 사업이 없다.

이러한 최근의 갈등은 피해보상 투쟁 중심의 초기 환경운동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시간적으로는 사후적 초치에 대한 요구라기보다는 사전 예방적이며, 피해보상이라는 인권적 요소보다는 미래세대와 생태주의에 기반한 대안사회에 대한 가치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발전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권리담론의 성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제는 환경단체 중심의 운동이 핵심이 아니라 튼튼한 권리의식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주민운동이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오염 물질들 간의 순환과 복합 상승효과 등으로 인과 관계를 정확히 밝혀내기가 어렵고, 환경 파괴로 인한 영향과 지해가 시간적으로 지연되어 나타나 즉각적인 대응책 마련이 힘들며, 기존의 지역적 수준을 넘어 전 지구적인 차원으로 그 영향이 확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통치 체제는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결과에 집중하는 선거 정치의 영향을 받아 장기적인 전망보다는 단기적인 시간 지평 위에서 작동함으로써 복잡한 생태 환경 문제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고 사후적 반응에 치우치는 경향이 크며, 관리주체와 책임 소재 또한 불분명한 문제가 있다.

결국 환경 문제를 둘러싸고 사전 예방적이고 포괄적인 통치 체제의 확립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포괄적 참여와 이들 상호 간의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노력을 통해 조정(coordination)과 조종(steering), 조절(regulation)의 사회제도적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통치 기제로서 거버넌스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정규호, 2003)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서의 물 문제는 권리의식에 제일 민감한 환경문제 중의 하나다. 위천공단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이 어마어마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이유, 해마다 팔당상수원 난개발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 등이 동일한 원인구조로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물 문제야 말로 거버넌스라는 새로운 통치 기제를 절실하게 요구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

2.5 근대화의 결과로서의 ‘웰빙’

양적, 질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우리사회의 주된 사회현상 중의 하나는 소위 ‘웰빙’이다. 현상으로서의 웰빙은 삶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주의 영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근대화 과정에서 의·식·주는 기본적 생존의 필요를 충족하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근대화의 결과 물질적 풍요가 전일화 되고, 개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필요 이상의 요구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물질주의의 가속화로 이어져 왜곡된 마케팅과 결합되면서 비정상적 소비의 과잉으로 나타나는 한편, 이와는 다른 현상으로 삶의 쾌적성에 대한 요구도 점점 확대되어 생활주변의 자연적 요소에 대한 이용이 빈번해지고 있다.

도시공간에서의 자연형 하천, 생활주변의 작은산, 대기질 등이 대표적인 요소이다. 근래의 대부분의 환경운동 주제도 이런 요소를 반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하천 살리기는 친환경적인 친수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운동으로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쉬울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그 가치를 현실화하기 쉬운 주제다.(오성규, 2004)

2.6 거버넌스의 모델로서의 물 거버넌스

물 문제는 철저하게 과거에 대한 성찰적 고찰로부터 출발한다. 자연형 하천 사업은 1970년대, 급격하게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하천을 단지 경제성장의 어두운 그림자를 신속하게 배출하는 공간쯤으로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인공적인 콘크리트 구조물과 복개하천에 대한 퇴출사업이다. 1958년에 복개공사가 시작된 청계천이 약 40여년 만에 자기부정의 역사가 진행중인 것처럼, 이제 하천의 자연적·미래적 가치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하천의 모습은 변하고 있다. 그런 현상은 치수, 이수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물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상·하류간의 갈등, 치수 우선 주장과 생태성 복원 우선 주장간의 갈등, 이용과 보전 간의 갈등, 중앙정부간 기능에 관한 갈등 등이 구조화 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이해관계의 대립은 대단히 소모적으로 진행되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고, 공동체적 질서를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정부는 유일한 의사결정자로서 하향식 의사결정에 익숙했고, 시민사회는 그에 대항하는 역할을 규정받아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양성이 전반화된 사회에서, 따라서 한층 갈등구조가 복잡해진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정부 역할로서 물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환경부가 4대강 수질개선특별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은 충분히 드러났고,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환경부의 행정행위가 큰 변화를 보여줬기에 법제정이 가능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앞으로 물 운동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것은 거버넌스의 핵심인 자발적 부문(voluntary sector)을 떠받치는 주체의 강화를 의미하며, 나아가 거버넌스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니셔티브가 제대로 형성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 거버넌스는 실재하는 여러 부문의 사회적 의제보다 거버넌스 체계를 민주적이고 성찰적인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3. 물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노력

3.1 물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NGO의 노력

탄천·양재천 유역 6개 기초 지자체가 참여하는 ‘탄천·양재천 환경행정협의회’가 발족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행정차원의 하천유역관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탄천·양재천 유역은 유역경계가 명확한 독립된 유역권을 형성하고 있어 유역관리시스템을 적용·시험하기에 이상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탄천·양재천유역 수질개선과 생태복원 기본계획수립을 위한 기초조사, 2002)

이러한 상황 속에서 ‘탄천·양재천 환경행정협의회’는 탄천·양재천 유역 수질개선과 생태복원 기본계획수립을 위한 기초조사를 실시했다. 이 기초조사는 유역관리의 기본방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수환경 관리, 오염원 정비, 하천공간·경관 정비, 생태기반의 보전 및 확보, 난개발에 대비한 대안 마련, 감시 및 평가 체계의 구축, 제도 및 주민참여 등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지침이 되고 있다.

탄천·양재천 유역의 6개 기초자치단체가 자발적으로 행정차원의 협력체를 구성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추진한다는 것은 진일보한 행위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범적인 유역행정협의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NGO의 역할이다. 행정의 자발성보다는 시민사회의 꾸준한 요구가 자치단체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낸 측면을 크게 봐야할 대목이다.

안양천 살리기 운동은 민·관·산·학이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하천 살리기의 주체로 나선 점과 서울시 7개 구(강서, 양천, 관악, 구로, 금천, 동작, 영등포)와 경기도 7개시(광명, 군포, 안양, 의왕, 과천, 부천, 시흥)가 유역협력을 통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점이 모범적 요소이다. 안양천 살리기 운동은 기존의 민간과 기술자 주도의 하천정비사업과 달리 민·관·학이 함께 참여하고, 시장직속의 ‘안양천 살리기 기획단’을 구성·운영하여 사업의 체계성과 우선순위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11개 자치단체를 통과하는 안양천의 유역특성상 상·하류지역의 공동협력과 참여를 유도하는 ‘안양천 유역통합관리체계 구축’, ‘안양천 유역의제’ 등을 제안하고, 다양한 시민참여프로그램과 지원방안을 다양한 NGO들이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밖에 진주의 남강에서는 시민단체가 가진 전문성과 운동성을 자산으로 하천의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서 행정에 반영토록 하는 운동이 진행됐고, 김해의 대포천에서는 주민들의 자발적 수질개선운동이 정부의 규제중심의 행정을 변화시켜 ‘수질계약제’를 현실화시켰다. 제주의 산지천 복원과정에서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시정참여가 자연형 하천복원이라는 쉽지 않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강살리기네트워크’활동 또한 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다. 강살리기네트워크는 하천보전의 핵심인 ‘유역보전’의 관점을 확산시키고, 강의 올바른 모습과 강 살리기 운동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이를 위한 연대와 정보공유를 활동의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강을 사랑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강의날 대회’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준비되고 있다.

3.2 한계와 과제

거버넌스의 출발은 과거의 규제기관, 즉 행정의 권한 내려놓기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여전히 행정이 모든 권한을 일방적으로 행사한다면 아마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시민사회의 성숙도가 빨라지고 있다. 따라서 행정은 전향적으로 권한을 내려놓고, 시민사회는 책임있는 참여가 상호간에 이루어진다면 거버넌스의 기본은 충족되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천에서의 하전 복원사업이 행정기관의 성과위주의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고, 대부분의 자연형 하천 복원 사업은 기술·관료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토목회사의 설계도에 의해 추진되는 자연형 하천 복원 사업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을 했다하더라도 시민들의 가치인식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가치의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 왜곡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연형 하천 복원의 가치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인식한 가운데 사업이 추진된다면 그것은 훨씬 많은 발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하천의 유지·관리나 친환경적 이용 등에 있어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의 실효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시민환경단체들의 꾸준한 하천 보전 운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오성규, 2004)

시민들의 잘못된 인식도 장애요인의 하나다. 삶의 쾌적성에 대한 요구로부터 출발한 자연공간의 복원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일 수 있다. 하천교육 프로그램의 단편성, 시민환경단체의 불안정성 등도 하천 살리기 운동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4. 물 거버넌스 구축을 위하여

4.1 물 거버넌스를 위한 전제

물 거버넌스는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주체와 행위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앞서 밝힌 바대로 우리사회에서 물 운동은 이미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고, 시민환경운동의 중심적 영역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물 운동, 혹은 물과 관련된 제반의 정책과 행위들을 미래적 통치 방식인 거버넌스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제가 있다. 이것은 향후 물 거버넌스를 활성화시키는 기반이 될 요소들이다.

사실 거버넌스에서 서로 상이한 이해 관계를 가진 구성원들로부터 공동 의사 결정을 통한 집합적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비전의 공유는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거버넌스 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성원들 간의 비전의 공유 수준에 따라 거버넌스 운영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에 갈등을 유발시켜 의사 결정 자체가 지연 또는 무산되기도 하고 대안 탐색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정규호, 2003)

4.2 물 거버넌스 활성화를 위한 과제

우선 물 거버넌스는 다양한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다. 기후온난화, 월경성 대기오염 문제(산성비, 황사 등), 물 사유화 문제, 물과 위생 문제 등 전 세계적 문제를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차원의 ‘국제적 거버넌스’가 있다. 국제적 수준에서의 물 거버넌스는 이미 UN차원에서 결의로 목표와 방향을 잡고 실행 단계에 접어든 상황이다. 지난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됐던 WSSD(지구환경정상회의)의 주요한 합의사항 중의 하나가 “2015년까지 안전한 식수와 위생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를 절반으로 감축”하는 목표였고, 이 목표는 이후 각종 국제회의에서 이행사항이 점검되고 있다.

두 번째 차원은 국가적 수준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물 거버넌스는 수자원장기종합계획, 하천 복원 가이드라인, 수질개선특별법 등 국가 차원의 물 정책과 관련된 종합계획이나 법·제도를 다루는 문제일 것이다. 이 부분은 최근 새로운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당장 시민사회가 주목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가 지역차원의 거버넌스다. 지역차원의 거버넌스는 다른 말로 ‘유역 거버넌스’라 할 수 있는데, 가장 공동체성이 강한 범주라는 것이 장점이다. 이상의 범주를 막론하고 향후 우리사회에 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과제가 제기된다.

① 물 운동 주체들 간의 튼튼한 연대

거버넌스는 행위자들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와 재정과 전문성이 없는 많은 시민사회 주체들이 거버넌스의 주요한 행위자가 되기 위해서는 권한의 일정한 비대칭이 요구된다. 이른바 출발선을 맞추자는 주장이다. 문제는 권한의 비대칭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절실한 것이 튼튼한 연대다. 현재 ‘강살리기네트워크’가 그 역할을 일정하게 맡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과부족이다. 보다 많은 지역 주체, 지역 사례와 접촉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부단히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② 정부의 권한 내려놓기·공유하기

앞서 언급했지만 거버넌스의 출발은 기존의 규제기관인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내려놓고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기본이다. 행정기관의 의사결정의 권한은 유지하되 과정에 민주성을 충분하게 적용하자는 것이며, 그 전제 속에서 시민사회는 ‘책임있는 참여’ 자세를 갖춰야 한다. 변화의 속도만을 놓고 본다면 아무래도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빠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몸이 가볍고, 따라서 새로운 가치에 대한 실행가능성이 높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지방정부가 새로운 가치를 따라 실행에 나서려고 해도 중앙정부가 가진 통제시스템이 이를 제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때문인지 몰라도 UN이 주최하는 회의에서는 지방정부를 비정부, 즉 NGO로 규정한다. 작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됐던 WSSD회의에서도 지방정부는 세계 유수의 NGO들과 함께 행동했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고 지방정부를 규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훨씬 앞선 사례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오히려 필요할 것이다.

③ 각종 정보공개와 공유

통상 의사결정 과정에서 왜곡이 만들어지는 것은 ‘정보 비대칭’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해당사자간의 충분한 상호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사안에서는 정보의 공유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까지 정보의 편중과 접근의 제한성이 여전하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꾸준하게 행정기관과 전문기관에게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켜야 하며, 공개된 정보는 상호간에 충분히 공유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공유된 정보는 시민사회의 가치와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전파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④ 지방정부와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는 ‘지방의제 21’의 활성화

그동안 ‘지방의제 21’은 우리사회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해온 기구이다. 민·관이 상호 파트너십 정신에 입각해서 조직을 만들고 의제개발과 실천을 조직하는 협력적 모델이다. 특히 유역 거버넌스를 실재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미 전국적인 조직을 구축하고 있는 ‘지방의제 21’ 구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지방정부와 지방의제21은 물과 관련된 관심과 실천 노력이 상당히 앞서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공동노력이 결합된다면 전국적인 모범사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⑤ 공동 비전 만들기

‘탄천·양재천 환경행정협의회’가 탄천·양재천 유역 수질개선과 생태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한 것, 안양천살리기네트워크가 ‘안양천살리기 기획단’을 구성하고 ‘안양천 유역의제’를 제안하는 것, ‘도림천시민의모임’이 도림천의 자연형 하천복원을 위한 구상을 수립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구체적 사례다. 우리는 수준이 깊든 얕든, 포괄하는 범위가 넓든 좁든 간에 시민들과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물론 비전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충분히 성찰할 수 있고, 또 의미있는 사회적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

⑥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

앞선 대부분의 사례들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교육이다. 사회적 학습은 시민사회를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조화롭고 진보된 사회로 우리사회가 나아가는데 자양분이 된다. 또 교육은 보다 질 높은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다. 대포천 사례에서도 주민대책위는 자발적으로 주민 스스로 지속적인 계몽활동과 교육을 실시했고, 그 결과 단순한 농민에서 대자적인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판처트레인호 유역재단에서는 강력한 교육 프로그램이 각광받고 있으며, 디트로이트에서 GREEN(The Global Rivers Environmental Education Network)에서 실시하는 ‘유역보전 프로그램’을 교육받은 학생들이 오작동 되어 강 하류에 박테리아 오염을 시키던 펌프를 찾아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보다 진전된 하천관리를 위해서는 하천관리의 주요주체들을 대상으로 선진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연수할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선진사례 교육 등의 다양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⑦ 공간적 거점 만들기

최근 30여년 동안 급속한 경제개발 과정에서 도시하천은 도시공간의 집약적인 이용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었다. 하폭이 좁아지고, 제방이 높아지고, 둔치는 주차장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작은 소하천은 도심교통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대부분 복개가 되었고, 하천으로는 생활하수와 오수, 공장폐수가 배출되어 신속하게 하류로 쏟아내는 역할로 규정되었다. 도시하천은 한마디로 급속한 경제발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공간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렇다보니 도시민들은 하천을 가까이 하기보다는 생활에서 점점 더 멀리했고, 행정도 무관심 속에 방치했다. 그것이 불과 5년,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던 하천이 이수와 치수의 기능을 넘어서서 친수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고, 사회의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의 무관심을 획기적으로 되돌리는 뼈저린 노력이 있어야 우리의 도시하천은 비로소 새생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하천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연형 하천 만들기, 하천 생태교육, 수질 모니터링, 문화행사 등으로는 단절적이고, 일회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문제는 생활 속에 친수공간이 들어와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하천을 경험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적 거점이 절실하다. 공간적 거점으로서의 ‘유역참여센터’는 시민들의 참여 일상화를 통해 하천관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현재 환경부에서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닿아있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들의 참여 속에서 활성화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 기대와 전망

세 번째 ‘강의날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사회의 물 운동이 상당히 넓고 구체적으로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거버넌스의 기본이 될 수 있는 행정기관의 태도변화에 큰 진전이 있음을 확인했고, 기업들의 관심 또한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의지와 노력의 진전도 전체적 목표를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없다면 쉽게 가시화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특히 물 거버넌스를 위한 NGO의 이니셔티브는 필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이며, 이를 위한 과제를 앞서 제시한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니셔티브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 연대와 구체적인 비전 수립,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실천, 정책수립 과정에 책임있는 참여 등이 철저하게 수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물 거버넌스가 수평적이 상향적인 소통구조를 보장하는 촉진자로서 의미있게 구축될 수 있도록 NGO들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