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신뢰 회복’ 위한 수도사업 개편 필요
정부정책 편향·불공평 개선 시급…비효율적 중복투자도 심각
수도사업, 일원화·전국화 급선무…지역간 형평성도 고려돼야

 

모처럼 수도사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도 민영화 논쟁’으로 이름 붙여진 2008년의 논란은 정부의 여러 부처, 시민사회 단체들 그리고 네티즌들까지 참여해 격하게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수도사업의 구조 개편은 피할 수 없는 사회 이슈가 됐다. 각 부서와 사회 세력들의 격돌 속에서 수도사업의 미래는 전망 예측이 어려워졌다. 우리 수도사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필자의 개략적 의견을 밝히고, 환경부의 물 산업 육성계획과 관련한 최근의 논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상수도 보급률은 91.3%, 정수시설 용량은 3천111만 톤/일, 수도관 연장은 13만4천706km이며 예산은 약 5조5천479억 원에 이르고 있다. 1인당 11만 원이 넘는 예산이 집행되고 있으며, 전체 급수인구에 0.7톤의 정수가 공급되고 있다.

이는 1991년의 낙동강 페놀 사건 등 하천 오염과 수돗물 파동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정부가 ‘물 관리 종합대책’ 등 세 차례의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3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한 결과다. 지난해부터는 전국 하천의 85%를 좋은 물로 만들겠다는 37조 원 규모의 ‘물 환경관리 10개년 기본계획’도 진행이 되고 있다.

 

수도정책 성과는 초라한 수준

그런데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국민은 겨우 1% 정도에 그치고 있다. 조리 과정에서도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국민이 20%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8억2천만 톤의 수돗물(14%)이 누수 되고 있으며, 지자체들은 2006년에만 6천400억 원의 적자를 쌓아 3조2천억 원의 누적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시설은 과잉투자 되어 정수장의 전국 평균 가동률은 50.8%에 불과한 실정이다. 감사원의 지적에 따르면 광역상수도와 지방상수도의 중복에 따른 예산의 낭비만도 3조7천억 원으로 추정될 정도다. 정부가 밝히는 수돗물의 생산가격은 704.4원/톤인데,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577.3원/톤을 수도요금으로 내고 있어 적자는 구조화돼 가고 있다.

반면, 농촌지역의 급수율은 48.8%에 그치고 있어 400만 명의 국민들이 공급의 안정성과 수질의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도서와 산간의 주민들은 정수기와 생수를 이용하고, 경운기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으며, 음용수를 위해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또한 2000년 이후에만 △경남 고성군 폐광 중금속의 이타이이타이병 논란 △울산 정수장 보론기준 초과 은폐 △대구 수돗물 1,4-다이옥산 검출 △이천 간이상수도 방사성물질 기준 초과 등 사고들이 발생했다.

▲ 농어촌 상하수도에 지원을 늘리고 소독방법과 관거관리를 개선해 냄새와 녹물을 줄이는 것이 우선적으로 시급하다.

비효율, 무책임, 불신의 틈바구니 속에서 먹는 샘물 시장은 연간 3천억 원, 정수기 시장은 7천억 원 규모에 이르고 있다. 해양심층수나 이온수 등 기능성 물의 시장도 급속히 확장돼 가고 있다. 투자에 비해 초라한 수도정책의 성과를 바탕으로 물 시장은 수도사업의 20%를 넘어서고 있다.

 

수돗물 음용, 국민 불신 높아

우리나라 수도정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의 불신이다. 오직 국민의 1%만이 수돗물을 직접 음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의 상수도 직접 음용률(30∼50%)에 비해 국민의 평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원인은 △노후 배관에 의한 녹물 △소독약품 냄새 △부실한 상수원 관리 △빈발하는 수돗물 사고 △폐쇄적인 행정 △부족한 정보제공 △홍보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수도정책의 두 번째 문제는 정책의 편향과 불공평이다.

기존의 수도정책은 대형 댐에서 대용량을 취수해 관거를 통해 도시까지 장거리로 이송하는 체계로 이뤄져 왔다. 따라서 중·하류 도시지역 수돗물 공급은 쉽게 해결했지만, 고지대와 소규모 농촌지역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그 결과 농촌지역의 급수율은 48.4%에 불과했다. 도서·연안·산간의 비 급수지역은 가뭄 때는 물론, 장마철에도 식수를 구하기 어려운 곳이 많았다. 급수지역이라고 할지라도 농촌지역의 수도요금은 터무니없이 높다.

정선군의 수도요금은 과천시의 3.8배에 이르고 있다. 도시화·산업화를 지원해 온 정부 정책의 결과, 농촌지역은 시설이 미비해지고 낙후되고 말았다. 효율성도 도시지역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다.

 

농촌지역 수도 비효율성 심각

그런데도 정부는 수도요금의 현실화를 주장하면서 단위 면적 당 인구수가 적고, 시설이 낙후해 생산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는 농촌지역에 추가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시설 건설비용의 일부는 반드시 내놓아야 하고, 운영비용은 지자체 또는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때문에 재정이 극히 어려운 지역은 관거공사를 포기해 비효율적 운영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지원으로 건설된 도서지역의 해수담수화 시설은 운영비가 없어, 대부분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대도시에 대한 투자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수익자 부담원칙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지역의 낮은 생산성을 매도하고서 민영화 주장을 앞세우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수도정책의 세 번째 문제는 비효율과 중복투자다. 환경부,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등이 제각각 진행한 사업들은 특히 도시지역에서 과잉 중복투자를 가져왔다. 지방정부는 더 많은 예산을 따내기 위해 규모를 부풀려 공사를 추진했고, 막대한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한 체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정수장 시설의 가동률 50.8%, 감사원 추정 중복투자 3조7천억 원은 비효율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통제 확보가 시급

수도사업 개혁의 첫 번째는 수도사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확보하는 일이다.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민영화만 배워올 게 아니라 이들 사회가 가진 물 기업들에 대한 치밀한 감독과 통계 프로그램을 먼저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은 수도시설은 민영화했지만, 수질을 규제하는 수질검사소, 가격과 서비스를 규제하는 물 서비스 감시청, 독점 등을 감시하는 경쟁위원회, 환경 규제를 총괄하는 환경청 등을 두고 견제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역차원에서도 환경청과 고객서비스위원회를 가동시키면서 기업들을 감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공기업 형태를 유지하면서 강력한 규제를 행사하고 있으며, 중남미의 국가들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규제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몇 개 광역 지자체에서 가동 중인 수돗물수질평가위원회가 있는 게 고작이다. 운영에 대한 감시는 정치적 태도를 보이기 쉬운 의회가 지자체 상하수도 요금을 규제하는 정도가 전부다.

자료의 정기적이고 투명한 공개, 수도 가격의 합리적인 결정, 사업성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담당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규제기구, 국민과 소비자들이 참여하는 감시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또 지역 차원에서 수도정책에 대한 진지한 감시와 평가가 가능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 하겠다.

 

지역간 형평성 고려돼야

수도사업 개혁의 두 번째 방향은 지역간 형평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농촌지역에 광범위하게 비 급수지역이 존재하고, 수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라면 수도정책은 언제든지 사고와 불만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외돼왔던 지역에 대한 보상,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평등권에 대한 존중, 지역의 국토 관리에 대한 지원의 의미로 지역에 대한 정부투자는 과감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기요금은 물론 쌀값과 과일 값조차 전국의 시장 가격이 비슷하고, 수돗물 생산 가격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댐 용수 가격조차 전국이 동일한 상태에서 수돗물 가격에만 수익자 부담을 운운하는 것은 편향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환경부가 주장하는 지자체의 수도사업 누적 적자액 3조2천억 원은 감사원이 지적한 환경부와 수자원공사의 중복투자 낭비액 3조7천억 원 보다도 적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을 정비해 지역에 대한 투자로 돌릴 수 있다면, 농촌지역 적자의 대부분은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여진다.

수도사업 개혁을 위한 세 번째 과제는 조직의 개편을 통한 효율성 제고다. 물론 조직의 개편이 환경부의 의지에 따라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서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복적으로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어렵다. 현재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행정안전부 사이에 불붙은 수도사업 개편의 난맥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도사업의 일원화와 전국화는 필요하다. 아울러 가장 큰 중복투자의 사례로 소개되는 광역상수도와 지방상수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이는 꼭 추진돼야 할 것이다.

환경부,「물산업지원법」제정

▲ 현재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행정안전부 사이에 불붙은 수도사업 개편의 난맥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도사업의 일원화와 전국화는 필요하다.

환경부는‘수도사업의 경영효율화와 서비스 향상을 통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함으로써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형화·전문화·개방화 추세의 세계 물 산업의 급속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물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며, 나아가 수출산업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을 「물산업지원법」의 취지로 내세우고 있다.

법안의 골자는 지자체가 운영하던 164개의 수도사업자를 30개 이내로 통·폐합해, 전문기업에게 위탁시켜 사업을 효율화하겠다는 뜻으로 보여진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들의 안정적 사업 환경 조성을 위해 국가 예산을 지원하고, 육성계획과 지원센터 등을 건립하겠다고 했다.

기존의 2015년까지 세계 10대 물 기업 2개를 육성해 ‘세계적 수준의 물 강국’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은 법안에 빠져있지만, 이는 법률에 포함된 ‘물 산업 육성 기본계획’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 신뢰 회복에는 무리 있어

▲ 정부의 맑은 물 공급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국민은 겨우 1%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조리 과정에서도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는 국민이 20%를 넘어서고 있다.

우선 「물산업지원법」은 수도사업에 대한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완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기에 수돗물을 ‘공공재’가 아니라 ‘경제재’로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다. 내용도 부실하고 취지도 모호하다.

수도사업의 기본을 담고 있는 「수도법」에 담아야 할 내용을 「물산업육성법」에 담겠다는 것도 억지스럽게만 보인다. 이는 사업자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아니다. 정보 입수와 민원상담을 허락하는 수준의 의미를 갖기는 힘든 내용들이다.

또 환경부장관의 사업자 평가는 행정안전부장관에게나 공개되는 수준이어서, 국민의 생명줄을 쥐락펴락할 기업에 대한 사회의 감시나 통제는 불가능해 보인다. 환경부장관과 10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겠다는 중앙수도사업위원회의도 부처 관계자들과 기업관계자 그리고 일부 학자들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에 시민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물산업지원법」은 ‘물 산업 육성을 위한 분야별 추진전략과 원칙’을 세우고 ‘상하수도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효율적인 경영 및 구조개편에 관한 이행사항’을 짜는 근거 조항이자 국가의 사업자들에 대한 예산지원 규정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추진 과정에서도 환경부는 기업들과 상의해 내용을 채웠을 뿐,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절차를 외면하고 있다. 사회적 반감이 확산되고, 타부서의 공세가 시작된 이후에야 면피성 행사를 진행하는 등의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농촌지역의 실질적 대책 부족

국민의 참여와 시민의 권리 보장을 위한 방안이 부실한 것은 이러한 배경과도 연결돼 있다고 본다. 그리고 수도사업의 형평성을 위한 대책이 매우 취약하다. 환경부의 계획대로라면 대형화·전문화의 필요가 집중된 곳은 농촌지역이고, 요금의 현실화 확률도 낮아 「물산업지원법」에 최우선 적용이 된다.

하지만 법률에서는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하여 농어촌 등 취약지역에 상하수도 시설을 설치하거나 낡은 시설을 개량하는 경우, 예산의 범위 내에서 우선 지원할 수 있다’고만 기재돼 있을 뿐 적극적인 대책이 없다. 무엇보다 시설비의 지원 외에, 운영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셋째, 수도사업의 경영효율화와 서비스 향상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알기 어렵다. 물론 영세한 지역 사업자들을 통합하고, 보다 체계를 갖춘 단위가 농촌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일부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중앙 부서들의 난립을 방관하고, 과잉설계와 부실한 평가의 관행을 둔 채 꾀할 수 있는 업적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책임 있는 운영이 우선돼야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 산업 강국’이 아니라 ‘안전한 수돗물과 신뢰를 주는 수돗물’제공이다. 농어촌 상하수도에 지원을 늘리고, 소독 방법과 관거관리를 개선해 냄새와 녹물을 줄이는 것이 우선적으로 시급하다. 정보 공개와 시민 감시 체계를 강화해 신뢰를 높이고, 지자체의 변덕으로부터 시설 운영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환경부는 지금이라도 ‘물 산업 강국 구현’이라는 번쩍거리는 비전 대신 ‘물 서비스 선진 사회’를 새로운 가치로 내세워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물 산업 강국’이 매력적인 구호임에 분명하지만, 이를 물 산업의 공공성과 바꿀 수는 없으며, 환경부의 존재 근거와도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환경부는 이번 민영화 논란을 물 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제시스템의 확보 계기로 삼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민영화된 기업은 사회적 감시가 어렵고, 사회적 이익과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민영화 반대 이유이므로, 정부는 수도사업 주체들이 투명하고 공익적인 운영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적 기대를 반영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한 환경부는 물 산업을 감독하고 규제할 수 있는 보다 치밀한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사회적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시민들이 또는 시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이 물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