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재고관리를 위해 시작된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이 건설사 사이에서 열풍을 불러일으키더니, 다시 엔지니어링업계로 불이 옮겨 붙는 모양새다. 시발점은 도화엔지니어링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도화엔지니어링은 ERP 도입 여부 및 도입 범위를 설정한 후 최근 프로그램 선정작업을 마친 상태다. 도화의 ERP 구축 목표시점은 내년 상반기쯤이다.

　도화에 ERP 도입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 말부터다. 기존에도 ERP를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엔지니어링사가 몇 군데 있긴 했지만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로 사실상 ERP라기보다는 기초 경영관리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ERP의 근본 취지인 생산, 영업, 인사, 회계, 자금관리 업무를 하나의 통합된 표준프로세스로 구축하는 단계에는 근접하지 못했다.

　현재 도화가 내부 검토를 통해 결정한 ERP 프로그램은 SAP으로 알려져 있다. 도화가 SAP을 선택했다는 것은 ERP를 어느 수준까지 원하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어서 눈길을 끈다.

　SAP을 사용 중인 회사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SK건설, 롯데건설, 쌍용건설 등으로 삼성엔지니어링도 포함된다.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2003년 SAP을 통해 ERP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영업관리, 프로젝트관리, 발주관리 및 재무회계, 자금관리, 관리회계 등의 모듈을 사용하고 있다”며 “전반적인 업무 통합을 바탕으로 한 프로세스 선진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 오라클보다는 SAP을 선택하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 동향”이라고 설명했다.

　오라클을 선택한 업체들은 기존 시스템을 보유한 상태로 재무회계의 ERP화만 추진하는 경우다. 오라클이 외부 시스템 인터페이스 등 개방성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SAP은 개방성보다는 업무 통합성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이다. 도화처럼 기존 업무 전산화 시스템이 없던 기업이라면 SAP을 통해 백지에서부터 프로그램을 구축할 수 있다.

　한편 건축설계 쪽에서 ERP를 구축한 회사는 희림이 거의 유일하다. 2002년 ERP를 도입한 희림은 자체 개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희림 측은 “당시 설계사 특성에 맞는 표준화된 ERP 제품이 없어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이후 시중에 ERP 제품이 업그레이드되며 시중 제품과 자체 개발 시스템을 혼용해 지금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업계에서는 이들 두 업체의 ERP 도입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도 아니고 직원의 지적능력을 활용한 의사결정이 주를 이루는 설계사에 ERP 도입은 과잉 경영투자일 수 있다”며 “오히려 ERP 도입 후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방치만 하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ERP 도입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한 업계 경영진은 도화의 도입 과정 및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업계 1위인 업체가 ERP 도입을 통해 경영선진화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업계에도 괄목할 만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는 엔지니어링업계들이 도화의 사례를 바탕으로 경영, 인력관리 효율화를 통해 영업이익률 하락을 다소 완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