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베트남에 민수용 원전과 핵연료의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베트남의 신규 원자력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과거 적국이었던 베트남에 대해 핵확산을 방지하면서도 상업용 원전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브루나이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0일 팜 빙밍(Pham Binh Minh) 베트남 외교부 장관을 만나 미국-베트남 원자력 협정에 서명했다. 케리 장관은 "향후 미국의 원자로를 베트남에 공급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계약 체결로 양국 기업에게 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베트남은 민간 부문에서 원자력 협력을 도모하는 이번 협정에 따라 원자력발전 설비를 개발 및 가동하면서 우라늄 농축 또는 플루토늄 재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며, 원전에 필요한 우라늄은 국제시장에서 조달하게 될 것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의 관리가 말했다.

미국이 베트남의 원전 시장 진출 움직임을 강화함에 따라 향후 베트남의 원자력 시장에서 원전 수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관리에 따르면 2,000MW급인 베트남의 첫 원전을 러시아가 수주했고, 추가 2기의 원자로는 일본이 수주했다.

미국-베트남의 이번 협정 하에서 미국의 기업들은 일본이 공급하는 원전 또는 베트남의 후속 원전에 핵연료, 원전 기기 및 원자력 기술을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소위 `123 협정`이라고 불리는 합의에 따라 GE와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한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베트남에 원자력 기기 및 기술을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협정으로 베트남은 2009년 UAE에 이어 미국과 농축·재처리 없는 핵 협정을 체결한 두 번째 나라가 되었다.

베트남은 향후 20년에 걸쳐 총 16,000MW 용량의 13기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베트남은 2010년 러시아와 신규 원자로 2기를 2020년까지 완공한다는 계약을 체결하였고, 같은 해 일본과도 추가로 2기의 원자로를 건설한다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베트남의 후속 원전에 대해서는 러시아, 일본, 한국, 미국 등이 현재 수주를 위해 경합을 벌이고 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한국형 원전 수주 지원을 위해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펼쳤으며 지난 9월 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경제협력 간담회에 참석해 "베트남 원전 건설협력이 구체화되면 양국 간 경제협력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베트남에서 한국형 원전 2기를 수주하기 위해 2013년 6월 예비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으며, 15개월 후 베트남 의회에서 승인을 받게 되면 최종 수주가 확정된다.

박 대통령의 방문 시 공동성명서에서 "양국은 한국의 원전 개발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 베트남 원전 산업의 육성에 기여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베트남에서의 원전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는 실제 한국 측은 이미 2곳의 원전 건립 용지를 선정했고, 베트남은 이번 수주 건에 한국 이외 경쟁 국가를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밝히고, 이번 베트남 원전 수주가 국내에서 터진 원전 비리 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URL 1).

베트남 전쟁이 종료된지 거의 40년이 된 현 시점에서 미국이 베트남과 협정을 체결한 이면에는 최근 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커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저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미국은 베트남의 원자력 개발에서 핵비확산을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케리 장관은 “우리는 북한 및 시리아에서 봤듯이 국제 핵비확산 조약의 위반은 불안정(instability)의 씨앗을 키우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우리는 세계의 파트너들과 가공할 무기의 사용 및 확산을 방지하는 규정과 규범을 강화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100억 달러(약 10조7200억 원) 규모인 베트남의 원전 시장은 2030년 500억 달러(53조6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중국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에너지 부족 상황에 직면한 베트남은 오는 2020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며, 2030년에는 전체 에너지의 10%를 원자력 발전으로 조달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