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A] 트럼프,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위기로 작용

지구온난화에 빨간 경고등이 켜진 1년이었다. 매달 세계 평균 기온 기록을 다시 썼고,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 혹한, 가뭄, 홍수, 태풍 등으로 화난 지구가 쏟아내는 분노를 받아냈다. 파리기후변화협정으로 다시 푸른 지구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잡았다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이내 좌절하기도 했다.

◇폭염은 기본, 혹한에 자연재해까지…’지구의 경고’

올 한 해 지구는 끝없는 경고를 보냈다. 사상 최고와 최저를 극단적으로 오가던 기록적인 폭염·혹한 행진과 폭우, 홍수, 가뭄 등은 지구가 계속해서 울린 '나, 아프다’는 신호였다.

올해 들어 급격한 지구의 '앓이’는 지난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양이 급속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CO2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NOAA에 따르면 2015년 이산화탄소 농도는 2014년에 비해 3.05ppm 상승했다. 측정이 시작된 이후 56년 만에 연간 최대 증가치다.

폭염은 기본이다. 동남아시아는 44.6도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에 시달렸고, 인도와 이라크도 낮 최고 기온이 각각 51도, 53도까지 올랐다. 7월 미국에서는 전국 48개 주의 기온이 32도를 넘어서는 등 20년 만에 처음 관측되는 이상고온이 이어졌다.

매달 전 세계 평균 기온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국립항공우주국(NASA) 등의 관측 이래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갔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136년 만에 가장 더운 해로 기억됐던 지난해의 기록을 단번에 갈아치울 전망이다.

그보다 앞서 연초에는 그말로 역대급 한파를 겪었다. 미국 동부지역을 마비시킨 폭설로 최소 20여 명이 사망했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폭설과 혹한에 피해가 발생했다. 동유럽과 러시아에도 살인적인 추위가 덮쳤다. 제트기류가 북극에 가두고 있던 냉기 '폴라 보텍스(polar vortex)'가 지구온난화로 남하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뉴욕시 면적의 두 배 이상을 집어삼킨 캐나다 앨버타 주의 산불이나 35년 만에 닥친 프랑스 파리 대홍수, 10월 미국 동남부를 공포로 몰아 넣은 '괴물' 허리케인 매슈 등은 모두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의 산물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나쁜 미래가 예견되고 있다. 미국 럿거스대 로버트 코프 교수 연구팀은 지난 100년 간의 해수면 상승이 2천80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라고 지적했다. 지금만큼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면 2100년에는 해수면이 3~4인치(약7.62~10.16cm) 더 높아져 세계 각국의 해안 도시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다.

북극의 얼음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는 올해 들어 북극 얼음 면적이 최대 1천452만㎢를 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비해 1만2천950㎢ 감소한 양이다. 지난 30년간 평균치보다는 무려 110만 ㎢ 작은 면적이다. NASA 역시 올해 북극 빙하의 양이 측정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 이래 4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알렸다.

생태계는 박살날 전망이다. 북극해의 2015년 연간 해조류 생산량은 1997년에 비해 47% 상승했다. 북극곰 개체수가 향후 35년 내 3분의1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생물이 고산지역으로 이동하고,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멸종되는 종(種)이 많아 향후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 것은 불보듯 뻔한 결과다.

지구의 분노에 인간도 놀랐다. 독일 포츠담 기후충격연구소의 스테판 람스토르프 교수는 "지금 우리는 일종의 기후비상사태에 놓여 있다"며 "완전히 전례없는 일"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 기상학자 에릭 홀트하우스는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무서운 상황"이라고, 프린스턴 대학의 기후학자 마이클 오펜하이머는 "기후 변화가 진행될수록 폭우와 홍수는 어떤 '새로운 표준(new normal)'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 늦은 화해의 '손 내밀기'…파리협정

지난 11월7일(현지시간)부터 18일까지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에 각국의 정상을 비롯한 대표 2만5천여 명이 모였다. 성난 지구를 달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올해 11월 4일 발효된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의 세부 이행규칙을 오는 2018년까지 마련하는 데 뜻을 모았다.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국가별 기여방안(NDC),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약속 이행 점검, 전 지구적 기후변화 노력 이행점검 등 파리협정의 핵심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 일정을 마련했다.

파리협정은 온실가스 배출양을 줄여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인 약속이다. 2100년까지 지구의 대기온도 상승폭을 2도 이하, 최대한 1.5도 아래로 묶어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 기후체제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우고 있어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약속이다. 당사국들은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2020년부터 파리협정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고 5년마다 이행상황을 평가, 목표를 재조정하게 된다.

국가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름에도 파리협정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전 세계 150개 국가 지도자들이 유엔 본부에 모여 파리협정에 공식 서명하면서, 유엔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하루에, 한 자리에서 서명하는 기록을 남겼다.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은 분야별 제안서를 내년 5월 차기 협상회의 전까지 사무국에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수치를 논의해 나가게 된다. 이후 내년 기후총회(COP23)에서 파리협정 당사국회의(CMA1)를 재개해 1년간 논의 사항을 점검하고 정회한 후 2018년 당사국회의에서 세부 이행규칙을 최종 채택하기로 했다.

회의 의장국인 모로코는 지난 11월 총회에서 정부 뿐 아니라 기업 및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촉구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기후 및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마라케시 행동 선언문'(Marrakech Action Proclamation for Our Climate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을 채택했다.

파리협정은 큰 틀에서 구속력을 갖지만 당사국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각 국가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안을 제출하고 정기적으로 검토를 받지만, 목표에는 구속력이 없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직접적인 불이익은 받지 않는다.

전 세계 국가가 충실하게 파리협약 내용을 지켜도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 이상 오를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이 좀 더 강도 높은 온난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마이클 오펜하이머 프린스턴대 교수는 “새로운 방향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 파리협정이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트라이엄프(triumph),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COP22가 한창 진행 중이던 11월 9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온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다. 이날 마라케시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는 미국 방향으로 향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해졌을 때에는 탄식과 한숨이 이어졌다. 순조롭던 파리협정에 거대한 암초를 만난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꾸준히 "기후변화는 날조된 것(hoax)"이라고 주장하며 지구온난화에 의구심을 표해왔다. 대통령이 된다면 유엔 녹색기후기금(GCF) 지원을 중단하고 파리협정의 핵심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 등 각종 환경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파리협정에서 빠져나올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파리협정이 미국의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외국이 미국의 에너지 사용량에 간섭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다. 미국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6%를 차지하며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국가다.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은 파리협정 발효를 서둘러야 한다는 움직임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일 이전에 정식 발효해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세골렌 루아얄 UN 기후변화회의 의장은 "3년 동안은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수 없고, 그 이후 탈퇴의사를 밝혀도 1년 동안의 공지 기간이 있어야 한다"며 "(미국 대통령의 임기인)최소 4년은 미국을 붙잡아둘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COP22에 참석한 각국 정부 대표들이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재확인 하고 이의 시행을 위한 행동은 취소할 수 없는 '불가역적'(irreversible) 의무라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부유한 나라가 2020년까지 빈국의 파리협약 준수를 돕기 위해 매년 1000억달러(117조6,000억 원)을 내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고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한 최상의 정치적 헌신"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각종 매체 인터뷰에서 파리협정에 대한 입장을 번복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으나 이후 탈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12일(현지시간)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측이 협정으로부터 탈퇴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을 대폭 줄일 수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실제상황이 됐다. 스콧 프로이트 오클라호마 주 법무장관을 환경청(EPA) 청장에 지명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업계와 친분이 있는 프루이트를 환경청장에 임명함으로써 오마바 대통령의 기후변화 대책을 해체하겠다는 신호로 분석된다.

프루이트는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해 온 화력발전소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 수질오염 방지 등 기후변화 대응책을 저지하기 위해 에너지 기업들과 함께 집단 소송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각종 환경규제 정책을 철폐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등 46개국이 참가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서 태양열 에어컨이나 LED전구등 관세인하의 대상인 친환경 상품 목록을 결정하는데 실패했다. 차기 트럼프 정부가 취할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지구의 위기는 트럼프가 끝이 아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전 세계적으로 반체제, 반 기득권 주의 포퓰리즘이 활기를 띠면서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파리협정을 훼방놓을 조짐이 관측되고 있다.

영국 극우주의 정당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운동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멍청한 집단적 오해"라고 주장하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 개발 등의 기술이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본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강력하게 주장해 온 UKIP가 지난 6월 국민투표 이후 정부 정책 수립에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기후변화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NF) 역시 마찬가지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는 점을 의심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전 지구 차원의 시스템보다 개별 국가의 대처를 강조한다. 마린 르펜 대표는 트럼프의 당선과 꾸준한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내년 4월 대선 출마를 노리고 있다.

[출처 = 한국무역협회(www.kita.net)/ 2016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