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저유가와 저달러, 저금리 등 이른바 ‘3저 현상’이 지속되던 당시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보였다. 한국은 1986년 이래 3년 동안 연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지금은 강한 달러를 제외하고는 저유가와 저금리의 상황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좀체 경기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블룸버그통신은 28일(현지시간) 유가하락이 반드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요즘 유가하락은 오히려 경기를 지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유 값 폭락으로 세계 곳곳에 투자돼 있는 오일머니가 빠져나가고, 원유생산업체들의 파산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980년대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신흥국 시장의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던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지난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유가 하락은 세금을 깎아 주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준다.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루 장관의 발언 전날인 20일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26.5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유가 하락은 즉각 주식 시장의 폭락을 불러왔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일 대비 249.28포인트(1.56%) 하락한 1만5766.74에 거래를 마쳤다.

루 장관의 말대로 정말 저유가는 국가경제 및 기업의 발전과 일반의 가계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

투자은행인 ‘RBC 캐피털 마켓(RBC Capital Markets)’의 외환전략가인 제이컵 우비나는 “저유가는 소비자와 기업 등 소비주체들이 대응하기 나름이지만 득보다 실이 많다”고 말했다.

국제로펌인 ‘프로스카우어 로즈’의 마틴 비넨스톡 공동대표는 “월가에서 한때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예측은 빗나갔다. 기름 값도 어느 선까지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 역시 틀린 예측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저유가로 인한 에너지회사들의 금융 불안은 경제발전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창 셰일오일 개발 붐이 일어날 당시 에너지회사들은 1달러를 벌면 2달러를 유전개발에 투자했다. 수입과 지출의 차이는 빚으로 해결했다. 은행 돈으로 장비를 사고 유정을 뚫었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상 제로 금리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셰일오일은 큰 유혹이었다.

그러나 기름 값이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장밋빛 꿈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셰일오일 회사들의 매출이 곤두박질치면서 빚에 몰리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에너지기업들의 여신을 줄이기 시작했다. 원유 및 천연가스 관련 채권 투자자들은 다만 원금의 얼마라도 건지지 위해 투매를 했다. 2008~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래 보기 어려웠던 광경이었다.

국제로펌인 헤인즈앤분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2개 석유 생산업자들이 도산했다. 그들의 부채는 모두 170억 달러 규모였다. 이들 회사의 주주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웰스파고와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JP모건 체이스 등은 이번 달 에너지 회사들의 부실여신을 틀아 막기 위해 최소한 25억 달러의 자금을 따로 준비해야 했다.

원유생산업체들의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우려들은 경제 일반으로 확산이 되기 시작했다. JP모건의 수석 경제학자인 마이클 페롤리는 “에너지업계의 문제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페롤리는 1980년 대 원자재 값 하락으로 인해 신흥시장 국가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원유생산업체들은 기름 값이 좋았던 시절에는 채권과 주식, 백화점 등을 사들였다. 축구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유 값의 하락과 함께 자산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세계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외환보유고는 2015년 중반에 비해 1천억 달러 이상 줄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통화당국에 따르면 이는 과거 금융위기 때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자료제공 : 한국무역협회(www.kita.net) 2016. 0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