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이 살아야 건강한 수생태계 회복”

 

도랑 살리기 운동 전개…생태적·경제적 가치 높여

마을공동체 회복…‘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확산 기대

 

물과 공동체 / 도랑 회복 통한 마을공동체 회복

 

▲ 오 기 현SBS ‘물은 생명이다’담당 PD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즉, 도랑이 살아야 강이 산다. 

도랑은 수계의 발원지로서 수질확보, 수량확보, 그리고 수생태계 보호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강의 수질 개선은 도랑의 수질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난 2011년 금강 유역에서 발생하는 BOD(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배출부하량과 T-P(총인) 배출부하량이 전체 금강 유역으로 배출되는 양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오염원의 절반이 도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수량 확보와 건강한 수생태계 회복을 위해서는 도랑이 살아야 한다.

‘도랑 살리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도랑의 개념을 행정부에 등록된 소하천이냐 아니냐에 관련 없이 길이 500m 이내, 폭 5m 이하의 소하천 중에서 ‘마을 앞을 지나는 구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연부락이 성립되려면 반드시 수원이 확보돼야 한다. 따라서 자연히 도랑주변에 마을이 형성된다. 
 

도랑이 살아야 강이 산다

 

‘도랑 살리기 운동’이란 우리 생활과 가장 친숙한 공간을 맑게 되살리자는 환경운동이자 마을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생명운동이다. 도랑의 실태 농촌 지역의 도랑은 농경지에서 유입되는 농약과 비료 등의 유기화합물, 농업용 쓰레기 투기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하천정비사업은 도랑을 직강화하고 제방과 하상을 시멘트 구조물로 바꾸어 도랑의 생태환경을 악화시켰다. 무분별한 지하수의 개발은 안정적인 수량 확보에 지장을 준다. 농촌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현상은 도랑에 대한 무관심과 관리 부재 현상을 가져왔다.

도시 지역의 도랑은 홍수 때는 오염된 물이 넘치는 공간으로, 평소에는 통행에 지장을 주는 방해물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길이 넓어지면서 길과 함께 연결되어 있던 도랑은 축소되거나 복개되어 그 형체가 사라졌다.

지난 2009년 4대강 유역의 도랑을 조사한 결과 67.5%가 복개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랑은 정책적으로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하천은 「하천법」상의 ‘국가하천’, ‘지방하천’, 「소하천정비법」에 따른 ‘소하천’으로도 분류되어 있지만 도랑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다. 아울러 하천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와 소방방재청은 이수(利水)·치수(治水)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고, 환경부는 수질과 수생태계 보전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통일되고 체계적인 ‘도랑살리기’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즉, 도랑이 살아야 강이 산다. 도랑은 수계의 발원지로서 수질확보, 수량확보, 그리고 수생태계 보호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아산시 송악면 유곡2리 적지미 마을 도랑 모습. [사진제공= 물포럼코리아(http://www.wfk.or.kr)]

 

‘도랑 살리기 운동’ 전개

 지방의 환경운동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도랑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어 성과를 보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이 통과되는 경남 산청군 금서면 ‘수철마을’은 환경단체인 한국생태환경연구소와 함께 지난 2007년부터 도랑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수철마을주민들과 연구소는 도랑에 음식물찌꺼기 버리지 않기, 쓰레기 버리지 않고 태우지 않기, 친환경 미생물 세제 쓰기 등 아주 기본적인 환경운동을 전개해서 수질개선과 수생태 회복에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지리산 둘레길’ 구간이 수철마을의 도랑가운데를 지나도록 되어, 수철마을을 지나는 탐방객들은 도랑의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신발을 벗고 도랑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수철마을의 도랑살리기가 알려져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현재는 민박집이 열 곳 넘게 성업중이다.

농촌지역 도랑 오염의 가장 큰 원인은 농업용 쓰레기와 함께 농경지에서 유입되는 농업용 유기화합물, 생활하수 등이다. 이들을 정화하기 위해 정화조를 설치하는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100가구 미만의 웬만한 작은 마을단위의 정화조도 40억 원 가량의 설치비가 필요하고, 유지비가 추가로 들어간다.

이러한 문제를 적은 비용으로 해결하여 도랑을 살린 마을이 바로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부수2리 ‘하얀민들레 마을’이다. 친환경생태마을로 알려진 이곳은 31가구에 전체 인구 78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역사가 백제시대로 올라가는 마을이 근래에 와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2007년 마을 어귀에 조성한 260㎡ 정도의 생태자연습지 때문이다. 충청권 주민들의 상수원인 대청댐 상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부레옥잠을 심은 습지를 3단으로 조성해 마을폐수의 70% 이상을 자연정화해서 하류로 내려보내고 있다.

▲ 농촌지역 도랑 오염의 가장 큰 원인은 농업용 쓰레기와 함께 농경지에서 유입되는 농업용 유기화합물, 생활하수 등이다. 이들을 정화하기 위해 정화조를 설치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도랑의 생태적·경제적 가치 높여

 

일본 미시마시에서의 도랑 살리기의 모범 사례를 볼 수 있다. 시즈오카현 미시마시의 겐베에 도랑은 미시마시에서 30㎞ 떨어진 후지산의 빗물이 지하에서 솟아나는 일종의 용출수이다. 일본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이 도랑도 다른 도심의 도랑처럼 심각하게 오염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직공무원인 와타나베 도요히로씨가 1983년 도랑 살리기에 뛰어들어 겐베에 도랑을 생명이 숨쉬는 도랑으로 변화시켰다. 도랑을 따라 난 ‘물의 산책길’은 지역의 명물이 되어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여름철이면 도심 도랑에서 아이들이 목욕을 하고 있다.

도랑이 살아나면서 주민들의 애향심도 동시에 강화되어서, 지금은 8천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도랑 가꾸기 사업에 참여한다. 미시마시 중심을 흐르는 겐베에 도랑 주변 740m 구간에 상점이 240개정도 있는데, 미입점 상점이 하나도 없다. 도랑 하나가 환경뿐 아니라 지역경제까지 되살린 사례이다.

환경선진국인 독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물을 산업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인공수로를 만들어 동력으로 활용하거나, 산업폐기물을 씻어내는 산업용수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튀빙겐의 ‘하머 바흐’, 즉 ‘하머 도랑’이다.

하머 도랑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 튀빙겐이 건설될 때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신발업자들이 가죽을 씻거나 염색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산업에 필요한 동력을 얻기 위해 열 개가 넘는 물레방아가 건설되기도 했다.

그런데 신발공장들이 대도시 지역으로 이전하자 도시의 모든 오물과 쓰레기를 씻어내는 하수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심각한 위생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렇게 원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하머 도랑은 자연스럽게 복개가 되어 시민들로부터 잊혀졌다. 하머 도랑이 다시 빛을 본 것은 1980년 경, 도시미관을 위해 도랑을 복원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시 정부는 옛날의 지도를 바탕으로 도심구간 600m를 복원했으며 주변 상가를 위해 작은 나무다리를 건설했다. 독특한 경관 덕분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상가와 카페가 번성하였고, 주변 건물의 가격과 임대료가 올랐다.

하머 도랑은 여름철 도시 외부의 바람을 끌어 들여와 도심의 온도를 낮추고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까지 한다. 시정부는 다리건설과 화분설치 등 적극적인 지원으로 도랑의 생태적·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도랑 살리기 운동’은 도랑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연부락민들이 도랑의 수질개선, 수량 확보, 수생태 보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성과가 나타나는 사업이다.

 

도랑 회복 통해 마을공동체 회복

 

도랑이 살아야 강이 산다. 그리고 도랑을 살리면 마을공동체를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위의 마을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랑 살리기는 관이 주도하는 토목공사가 아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다. 도랑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연부락민들이 도랑의 수질개선, 수량 확보, 수생태 보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성과가 나타나는 사업이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주민들 간의 거버넌스가 형성이 되고 자연스럽게 애향심이 생긴다. 수철마을, 하얀민들레 마을은 ‘도랑 살리기 운동’이 생태마을 가꾸기로 이어져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특산물을 마을 공동으로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수철 마을은 마을 입구에 직거래 부스를 마련해서 특산품인 ‘곶감’을 공동판매하고, 하얀 민들레 마을은 마을 주민들이 역시 공동으로 제작한 홈페이지를 통해 ‘하얀 민들레 생체’, ‘생대추’, ‘블루베리’ 등을 판매한다.

일본 미시마시 겐베에 도랑은 ‘도랑 살리기 운동’을 시작할 때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의식과 애향심이 형성되었지만, 도랑이 살아나니까 주민들의 관심과 애향심이 더 높아지는 상승효과가 있다. 현재 겐베에 도랑 살리기 사업에는 11만 미시마시 인구 중 무려 8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한다.

아산시 송악면 유곡2리에서 만난 주민은 도랑 살리기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도랑이 살면 물이 맑아져서 배추밭, 파밭 농사에 물대기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둘째, “도랑을 살려 놓으니까 주변에 전원주택과 펜션이 들어와서 땅값이 오른다”는 것이다.

셋째, “도랑이 살게 되니 휴가철에 손자손녀가 물놀이하러 놀러 오더라”였다. 도랑 살리기를 하니까 직접적으로 경제적 혜택이 돌아오고, 자녀들까지 고향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도랑 살리기 운동이 수생태 회복과 함께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 일본에서는 도랑 살리기의 모범 사례를 많이 볼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