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워터저널(www.waterjournal.co.kr) 2005년 6월호 / 데스크칼럼]

 

국내에 가정용 정수기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1950년대 초로, 1948년 미국에서 개발된 제품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것이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기라 할 수 있다.

이후 상품화된 것은 1968년도이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의 본격적인 산업화와 환경오염으로 인한 상수원의 수질이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발전에 따른 생활수준 향상으로 깨끗한 물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생수가 등장, 먹는 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증폭되었고, 이러한 관심은 1990년대 초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등으로 인해 수돗물 불신이 고조되면서 정수기 시장이 급성장, 현재 600만 대 이상 보급되어 TV, 냉장고, 세탁기처럼 생활가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1995년 먹는 샘물(생수) 시판이 허용되면서 18.9ℓ나 13ℓ짜리 같은 대용량의 먹는 샘물을 꽂아 사용하는 냉온수기도 보편화되어 냉온수기 역시 200만 대 정도 보급되었다.

이에 따라 수명(4∼5년)이 다한 제품의 폐기 수량도 해마다 늘어 연간 정수기 20만 대, 냉온수기 5만 대 정도가 폐기되는 것으로 정수기 및 먹는 샘물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특히 정수기에는 4∼5개의 필터가 있고, 교체시기는 세디멘트 필터 3∼4개월, 프리 카본 필터 6개월, 멤브레인(R/O) 필터 24개월, 중공사막(UF) 15∼17개월, 포스트 카본 필터 9∼12개월로 정수기 1대에서 1년에 8∼9개의 폐필터가 나온다. 현재 600만 대 이상의 정수기가 보급된 것을 감안하면 연간 5천만 개 이상의 폐필터가 발생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제품 및 부품의 경우 케이스는 플라스틱(ABS)이나 철판, 저장탱크 스테인리스, 콤프레서(압축기) 및 냉각기는 철판과 동관, 그리고 정수기 필터는 PP(폴리프로필렌)나 PE(폴리에칠렌) 재질로 되어 있어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립을 하거나 소각에만 의존, 환경오염 유발 및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정수기·냉온수기도 TV, 냉장고, 세탁기처럼‘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제도’란 제품생산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의 폐기물에 대하여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여 재활용하게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최고 1.3배)의 재활용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하는 제도이다.

시행 첫해인 2003년에는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개인용 컴퓨터 등 전자제품과 타이어, 윤활유, 전지류(수은전지·산화은전지·니카드전지·리튬전지), 포장재(종이팩, 유리병, 금속캔, 필림류를 제외한 합성수지 재질 포장재) 등 총 18개 품목을 지정, 시행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형광등과 라면·과자 봉지 등 필름형 합성수지 재질포장재를 포함시켰으며, 올해에는 휴대폰 단말기(전지·충전기 포함)와 오디오가 적용되고, 2006년에는 복사기·팩시밀리 등이 포함된다.

물론 정수기·냉온수기를 EPR제도에 적용시키는 데에는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제조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하여 도산 등으로 인해 판매된 제품에 대한 수거가 불가능하고, 재질 또한 업체별로 다르기 때문에 수거하여 재활용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정수기 시장은 웅진코웨이, 청호나이스, 하이필, 원봉, 암웨이 등이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이들 회사는 폐기되는 정수기나 폐필터를 위탁업체나 정수기조합 지정업체에서 수거, 재활용하거나 소각·매립시키고 있다. 냉온수기도 냉온정수기(정수기+냉온수기) 제조업체에서 대부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정수기조합에서는 중소업체 정수기 제품에 ‘이슬로’라는 브랜드로 공동판매하고 있고, 조합 부설 정수기종합관리센터에는 전국에 150개의 지부가 있어 이들 지부에서는 필터 교체 등 정수기 관련 A/S를 해주고 있다.

또 환경부에서는 필터 등 정수기 부품에 대한 표준규격을 곧 제정할 예정이다. 특히 정수기조합에서는 정수기 폐필터만을 전문적으로 수거, 재활용하는 업체를 선정하여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정수기·냉온수기에 대한 EPR제도를 도입 여건은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본다. 정수기조합이나 샘물협회에서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배철민 편집국장]